와인 애호가들은 말한다. 와인은 후각과 미각과 상상력으로 즐기는 것이라고. 잔에 가득 담긴 와인의 향을 음미하고, 혀로 맛보며, 그 경험을 통해 하나의 그림을 그리라고. 이렇듯 한 잔의 술도 충분히 느끼기 위해선 꽤 여러 가지 감각들이 필요하다.
사랑이 변한다는 건 결국 이런 감각을 잃어버리는 것 아닐까. 처음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자신의 감각기관을 총동원해 그 순간을 즐긴다.
아침에 뿌린 향수의 희미한 여운을 예민하게 잡아내고, 부드러운 미소를 놓치지 않으려 눈동자를 고정하며, 손끝 섬세한 촉각을 통해 피부를 확인한다. 그리고 당연히도 이 모든 감각의 유희는 두 사람의 미래가 행복할 것이란 낙관적인 상상을 불러온다.
반면 오래된 연인들은 불감증 환자와도 같다. 연인의 헤어스타일이 변했다는 걸 눈치 채는 게 퍼즐의 틀린 그림 찾기보다 어렵고, 상대의 얘기보단 거래처에서 보낸 문자 메시지에 신경이 더 쓰인다. 로댕의 조각상을 만지듯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손길엔 최소한의 성의마저 담지 않는다. 감각을 잃어버리면 감흥도 사라진다. 세상과도 바꿀 수 없었던 사랑은 쇼핑몰에 걸린 평범한 티셔츠처럼 더는 특별하지 않다.
예술과 문화는 감상자의 감각 확장에 초점을 맞춰 발전해 왔다. 영화는 1927년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를 통해 목소리를 얻었고, 이젠 3D와 4D를 통해 입체감과 후각 그리고 촉각마저 탐낸다. 1981년 미국 음악 전문 TV 채널 MTV는 뮤직 비디오를 통해 음악에 영상을 제공함으로써 '보는 음악'의 시대를 열었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키네틱 아트(움직이는 모든 예술작품의 총칭)의 시대를 연 알렉산더 칼더는 전통적인 조각가 집안에서 태어났음에도 모빌을 통해 미술품이 움직일 수 있다는 상상을 현실화시켰다.
하나의 사랑은 하나의 예술품으로 은유된다. 그러나 그 단계는 우습게도 역순으로 진행된다. 연애 초기의 싱싱했던 감각기관들은 영장류의 귀처럼 조금씩 퇴화하여 예전만큼 영민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무관심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연애 감각의 총체적인 부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싸움이 잦아진 연인들의 입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 있다. "이 남자가 요즘엔 내 말을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아." 청각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런 말도 나온다. "연애를 3년쯤 하다 보면 여자 친구 허벅지나 내 허벅지나 그게 그거다." 촉각을 상실한 것이다.
이쯤에서 니컬라스 케이지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패밀리맨'의 대사를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다른 여자에 관심을 갖는 주인공을 보면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정신 차려. 네가 별것도 아닌 여자에 시선을 뺏기는 사이에 다른 놈들은 네 아름다운 아내를 쳐다보고 있다고."
인생에서 중요한 건 문제의 원인이 아닌 해결 방법이다. 사랑에 있어서만큼 나는 유물론자다. 의식이 행동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의식을 만든다. '호기심이 사라졌다' '싫증 났다'라는 무책임한 말을 하기 전 다시 한 번 상대의 향기에 궁금해하고, 부드럽게 얼굴을 쓰다듬으며, 뒷모습에 시선을 던져보자.
부상을 당해 오랫동안 경기에 뛰지 못한 선수들은 수백 번의 슛을 하고, 수백 개의 공을 던지며, 지루한 운동장을 묵묵히 달린다. 슛을 할 때 발목의 움직임과 공을 던질 때 손목의 각도, 달릴 때의 페이스를 되찾기 위함이다. 경기에 다시 나서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기울이는 선수들을 보며 사랑에 대해 생각해본다. 어쩌면 당신과 나는 별것도 아닌 부상에 섣부른 은퇴를 결정해 버린 끈기 없는 삼류 선수는 아닌지 말이다.
봄이다. 멋진 풍경이 펼쳐진 곳에 가면 결혼식을 앞둔 예비부부들의 행복한 웨딩 촬영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쳐다보며 생각한다. 10년, 20년이 지나고 나서 행복한 시절이 조금씩 빛바래 갈 때 지금 찍고 있는 웨딩사진은 그때의 감각을 되살려 다시 한 번 위기를 넘기게 해줄 보험이 되지 않을까 하는.
휴대전화보다 유선전화가 통화감이 좋은 것은 케이블로 굳건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면 텔레파시 따윈 믿지 마라. 코를 킁킁거리고, 눈꺼풀이 닫히는 순간이 아쉽다는 듯 바라보고, 손을 꼭 잡아라. 그런 것이 진짜 사랑이다.
[김태훈의 러브 토크] 당신에겐 지루한 그녀, 남들에겐 신선한 그녀
닉 부이치치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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