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정 송학식품 회장이 파주공장에서 떡볶이용 떡 생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떡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라며 "부드럽고 쫄깃한 맛을 내는 데 주력한다"고 말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1962년 추석 무렵 서울 원효로. 재래시장 내 방앗간은 떡을 하려는 사람들로 이른 아침부터 길게 줄을 섰다. ‘쿵더쿵’ 소리가 흘러나오고 고소한 참기름
냄새도 풍겼다.
당시 열다섯 살이던 성호정 송학식품 회장(65)에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은 ‘그림의 떡’이었다. 침 넘어가는 것을 겨우 참으며 판잣집 한쪽에 세워져 있던 자전거의 먼지를 닦았다. 바퀴에 바람을 가득 채운 뒤 뻥튀기를 한보따리 실었다. 새벽에 튀겨놓은 것을 싣고 인천으로 떠나는 것이다. 서울보다는 이 지역에서 훨씬 더 잘 팔렸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그때 여덟 식구를 먹여살리는 가장이었다. 부친이 부산에서 식품사업에 실패하자 온
가족이 원효로 부근 판잣집으로 도망치듯 이사왔고 그때부터 6남매의 장남이던 그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부산에서 다니던 중학교도 중퇴했다.
그로부터 50년이 흐른 지금. 성 회장은 국내 최대 떡 제조업체 경영자로 우뚝 섰다. 뿐만 아니라 배고픈 사람에게 떡을 무료로 나눠주는 봉사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 회사의 파주공장 벽에는 시장조사전문기관인
링크아즈텍이 ‘2008~2010년 3년 동안 떡 및 떡볶이류 국내 점유율 1위’로 인정한 현수막이 걸려 있다. 그는 “3년 단위로 실시하는 조사에서 국내에서 가장 큰 떡업체로 나타났다”며 “아마도 세계에서도 규모가 가장 클 것”이라고 말했다.
파주 운정역 부근 4만㎡ 부지에 빼곡히 들어선 이
공장에선 방진복과 방진모자를 쓴 직원들이 밥을 지어 섞은 뒤 가래떡을 뽑아낸다. 긴 컨베이어를 타고 떡이 지나가는 곳에선 김이 피어오른다. 물로 식힌 뒤 다시 원하는 모양을 만들고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부드럽고 맛있는 떡으로 완성된 것이다. 이들은 떡국용 떡과 떡볶이용 떡 등으로 포장돼 전국으로 실려나간다. 미국 일본 중국 유럽 등 세계 60여개국으로 수출도 한다. 작년 매출은 476억원에 달했다. 성 회장은 “이 중 수출은 약 600만달러”라고 말했다.
파주와 충북 청원 공장에선 종업원 370명이 떡과 국수 수제비 등을 생산한다. 100여개 협력공장에선 송학식품의 주문을 받아 각종 식품류 수백종을 만든다. 어떻게 자본도 없고 학벌도 없는 뻥튀기 행상이 국내 최대 떡업체를 일궈낸 것일까. 그의 경영철학은 독특하다.
첫째, ‘어려운 이웃을 도우면 성공한다’는 것이다. 성 회장은 뻥튀기 행상을 거쳐 서울 신길동 5평 가게에서 국수를 만들며 조금씩 사업을 키워왔다. 그 뒤 생산 제품을 점차 수제비 떡 등으로 늘렸다. 서민들이 즐겨먹는 제품들이다. 배고픈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사업 초기부터 이들 제품을 틈틈이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보냈다. 그는 “요즘은 추석 설 등 명절을 포함해 두 달에 한 번꼴로 1만5000~2만명이 먹을 수 있는 떡과 국수 수제비를 전국으로 보낸다”고 설명했다.
이런 소식을 들은 몇몇 지인이 “그러면 회사가 제대로 되겠느냐”고 걱정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불황에 비용 절감을 외치는 일반 경영자와는 딴판이다.
하지만 성 회장은 “좋은 일을 하면 더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을 수십년간 체험했다”고 강조했다. 그가 사업을 하다가 자금난에 처했을 때 생면부지의 사람이 전화를 걸어와 밀가루 수백포대를 외상으로 빌려준 것이나 거래처가 앞장서 구전으로 마케팅에 나서는 것도 성 회장의 선행을 들은 데 따른 것이다. 매출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그의 기업관은 남들과 다르다. 성 회장은 “기업은 내 개인 것이 아니라 내가 맡아서 관리하는 것일 뿐”이라고 답한다.
둘째, ‘새벽 경영’이다. 그의 출근시간은 밤 12시에서 새벽 2시 사이다. 성 회장은 “뻥튀기 장사를 시작한 뒤로 평생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오후 8시에 잠자리에 들면 밤 12시에 일어나 회사로 나온다. 오후 10시에 자면 새벽 2시에 일어나 출근한다. 새벽에 나오는 것은 교통 혼잡이 없는 이 시간대에 각
대리점에서 트럭을 몰고와 제품을 싣고 가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살피면서 현장의 애로나 건의를 듣는다.
거래처들은 이 제품이 잘 팔리니 생산을 늘려달라, 이런 제품을 개발하면 어떻겠느냐고 건의한다. 이는 신제품 개발로 이어진다. 송학식품이 연간 100여건의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도 새벽시간대의 경청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뒤 사무실로 올라가 경영 현안을 점검한다. 성 회장은 이렇게 하루를 새벽과 오전 오후로 3등분해서 활용한다.
셋째, ‘메모 경영’이다. 그의 와이셔츠 윗주머니에는 늘 작은 수첩이 들어 있다. 여기에 대리점들의 건의 사항과 제품 아이디어, 경영 개선 사항을 적는다. “메모만큼 경영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는 게 성 회장의 지론이다. 그래서 아예 빨간 표지의 ‘포켓용 송학식품수첩’을 만들어 전 직원에게 돌렸다. 언제 어디서든 메모하라는 의미에서다. 수첩은 아이디어의 보고이면서 지시 사항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송학식품이 현재 생산하는 제품은 크게 떡제품과 국수,
기타 제품으로 나뉜다. 이 중 떡은 용도에 따라 떡볶이용과 떡국용으로 구분되고 모양과 크기에 따라 또다시 수십종으로 갈라진다. 국수 종류도 전통국수 칼국수 냉면 막국수 메밀국수 쫄면 등 수십 가지다. 이 밖에 만두 맛김치 누룽지 미숫가루 등도 생산한다.
뻥튀기에서 시작한 성 회장의 서민식품 인생은 올해로 50년이 됐고 환갑도 지났지만 그의 꿈은 청년시절보다 더 부풀어오르고 있다. 중국시장에서 제2의 도약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최근 다롄과 상하이를 다니며 시장조사를 했다. 성 회장은 “우리 제품을 동포들만 먹는 게 아니라 현지인들도 무척 즐긴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조만간 주요 도시에 우선 10여개 대리점을 내고 마케팅을 강화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 전통식품의 맛을 중국 대륙에 알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굶주림 해결에는 국수가 최고 식품…가난한 나라 지원 앞장
성호정 송학식품 회장은 키가 작다. 160㎝ 정도다. 어린 시절 잘 먹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 뻥튀기 자전거 행상을 할 때는 인천에서 장사를 한 뒤 오류동 고개를 넘다가 파출소에 잡혀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힘에 부쳐 자전거를 끌고 가다가 밤 12시를 넘겼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통행금지가 있었다. 그는 “저녁만 제대로 먹었어도 페달을 힘차게 밟을 수 있었을 텐데…”라고 회고했다.
그가 국내뿐 아니라 해외 어린이를 돕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성 회장은 케냐 등지에 국수
기계를 보내 현지인들이 국수를 생산해 먹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는 “식재료 중 가장 싼 게 밀가루와 옥수수”라며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어 먹게 하면 얼마든지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성 회장은 이런 방식으로 10여개의 최빈국 기아 해결에 나설 생각이다. 그는 “이들을 돕는 게 내가 사업을 하는 목적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이런 성 회장의 생각을 반영하듯 이 회사의 사훈은 ‘상애(相愛)’다. ‘서로 사랑하자’는 것이다. 그는 “하지만 이런 생각이나 구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 
마음이 꺾일 때 나를 구한 한 마디 
